공학,과학

[KOR] [공학,과학] 양자역학 (I)

Raaaaay 2023. 10.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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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이란

- 주요특징(양자화, 파동-입자 이중성, 불확실성원리,고전역학과의 차이점)

- 히스토리 

- 양자역학의 형성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미시적인 계의 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학의 분야로, 분자, 원자, 전자, 소립자 등 아주 작은 크기를 갖는 미시적인 시스템의 동작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이론입니다. 

양자역학은 현대 물리학의 중심 주제 중 하나로, 아원자 입자와 입자 집단을 다루는 물리학의 기초 이론으로 평가되며, 그 특이성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화 개념을 도입합니다.

주요 특징:
양자화(Quantization)

: 양자역학은 물리량이 연속적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양자'로 표현되는 이론입니다.

이는 에너지, 운동량 등이 정수배의 양자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파동-입자 이중성

: 양자역학은 입자가 파동로도 행동한다는 파동-입자 이중성 원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입자와 파동의 동시 존재로 인해 예측과 해석이 고전 물리학과 다릅니다.

불확실성 원리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원리에 따라 양자역학에서는 동시에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제한이 있습니다. 이것은 미시세계에서의 관측의 한계를 나타냅니다.

파동 함수

: 양자상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은 '파동 함수'입니다. 이 함수는 입자의 상태와 확률적 정보를 담고 있으며, 양자역학 계산의 핵심입니다.

고전역학과의 차이

: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간의 주요 차이점 중 하나는 예측 가능성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불확실성이 내재되어 있어 우리의 직관과 다른 결과를 제공합니다.

 

 

 


히스토리:
1900년: 막스 플랑크가 양자화 개념을 도입하고 플랑크 상수를 제시하며 양자역학의 씨앗을 뿌립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광자(광자) 가설을 제안하고 양자 이론의 일찐을 만듭니다.
1913년: 니얼스 보어가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양자화 이론을 통해 설명하며 원자 구조에 대한 양자 모델을 제시합니다.
1920년대: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다지고 파동-입자 이중성 원리를 발전시킵니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원리가 도입되며 양자역학의 현상을 묘사합니다.
양자역학은 현대 물리학과 기술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며, 컴퓨터의 작동 원리, 물질의 특성, 에너지 수준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미래의 연구와 응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양자역학의 형성

제1차 세계 대전이 종료하고 평화가 회복되면서 20세기 초기에는 물리학의 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1918년에는 노벨 물리학상이 독일의 막스 플랑크에게 수여되었으며(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21년, 닐스 보어는 1922년에 수상), 이로 인해 독일을 중심으로 양자론 연구가 진전되었습니다. 

주요 연구 중심지로는 코펜하겐(닐스 보어), 뮌헨(아르놀트 조머펠트), 괴팅겐(막스 보른, 막스 플랑크), 레이던(파울 에렌페스트) 등이 있었고, 취리히의 에르빈 슈뢰딩거, 베를린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는 젊은 세대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양자역학의 형성은 두 가지 주요 접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보어의 원자 모형에서 시작하여 대응원리와 행렬 역학을 통해 발전한 방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광자 개념에서 시작하여 루이 드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을 거쳐 파동역학으로 이어진 방식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접근은 초기에는 다른 이론으로 보였지만 나중에는 동일한 내용으로 통합되어 양자역학이 성립되었습니다.

양자역학의 형성 당시에는 물리학적 해석에 대한 여러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파동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슈뢰딩거는 이것을 실재로 보았지만 아인슈타인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또한, 보른의 확률해석이 도입되었지만 이것도 불충분한 부분이 있어서 많은 모순을 유발했습니다. 결국 1927년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제시되었는데, 이것은 파와 입자의 상호보완성 원리를 강조하여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일상 경험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보어는 이러한 생각을 확장하여 양자역학의 일관된 해석을 제안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새로운 양자론의 해석을 찬성하지 않았으며, EPR 역설 등의 의문을 제기했지만, 동시에 양자역학의 독특한 주장은 당시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쳐 물질의 부정과 주관주의 및 실증주의 세력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양자역학의 결론들은 당시의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들이 가진 고전물리학적 직관과 어긋난 것으로 여겨져 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며 양자역학의 확률적 측면이 실재 그 자체임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무작위성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이로 인해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하며, 현재까지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파동함수는 그 해석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양자역학의 대상이 실재하는지, 양자역학의 측정이 결정론적인지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로 인해 물리학의 철학적 고민이 새롭게 등장하였습니다.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실험 불가능한 한계에 다다른 물리학의 발전은 양면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편으로는 물리학의 이론적 발전을 이끌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실험이 어려운 가설들을 내놓게 되면서 물리학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현대 물리학과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